어린날의 나는 사랑자판기였다.
내가 가진 가치가 없을 때
내가 줄 수 있는것은 사랑한다는 말 뿐이였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사랑한다고 외쳐댔다.
그 여자를 잡아두기 위해서 할 수 있는것은
그것뿐이였다.
인간의 자극에는 역치라는것이 있다.
역치 이상의 자극이 가해지지 않으면
인간은 자극으로부터 무덤덤해진다.
나의 사랑한다는 말 또한 그러했다.
역치가 계속해서 높아지는 상대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아내야 했고
그럴수록 내가 쏟아내는 사랑의 가치는 떨어졌다.
당연한 시장논리다.
흔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것은 가치가 떨어진다.
나는 그 돌파구를 완전히 착각했던 것이다.
더 많은 사랑을 주면 좋아하겠지?
아니다 더 많이 줄수록 내가 주는 사랑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
그렇게 내가 주는 사랑의 가치가
상대의 역치를 넘지 못했을 때
나는 차였다.
내가 주는 사랑은 그저 자판기에서 뽑아먹듯
인스턴트같은 사랑이였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밤새 전화를 하고, 기념일을 챙기고
그럴수록 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것을 깨달았기에
내가 주는 사랑에 프리미엄을 부여했다.
이상하게도 여성들은 이걸 본능적으로 알고있다.
'나 쉬운여자 아니야','내가 쉬워보이면 어쩌지?'
이런 고민을 누가 알려줘서가 아닌 본능으로 알고있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이 쉬워져야한다고 착각한다.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렇게 가르친다.
남성은 무조건적인 헌신을 해야하고,
호구처럼 사랑을 쏟아내야 한다고
그게 로맨스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로맨티스트라 가르친다.
로맨스는 사랑의 한 카테고리일 뿐이지
모든 사랑이 로맨스여야 하는것은 아니다.
흔히 미디어에서 다루는 로맨스는
가족인 아내에게 주어야하는 사랑이다.
연인은 엄연히 남이다.
남이기에 항상 서로의 가치평가가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나를 가치평가할 데이터표본이 많을수록
나를 가치평가하는 잣대는 더욱 무거워진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을 남용하는것은 그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렇기에 당신이 내뱉는 사랑에는 보상체계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사랑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런 보상회로를 상대에게 심어주어야
당신이 주는 사랑이 가치있어진다.
상대에게 노력을 해야 사랑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알고리즘이 자리잡히면
상대는 당신이 주는 사랑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또한 더 많은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값싼 사랑을 공장처럼 찍어내는게 아닌
값진 사랑을 정제해야 한다.
'요즘 왜 사랑한다 말 안해줘?','왜 너는 선물 안해줘?'
'나를 사랑하긴 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사랑을 확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빠지면 된다.
내가 한가하게 핸드폰만 붙잡고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만 쏟아내길 원해?
평생 싸구려 곰인형과 꽃다발이나 주길 원해?
너한테 좋은걸 주기 위해 바쁜거지
바쁘다고 널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다.
이렇게 답했을 때
정상적인 여성은 수긍을 한다.
그럼에도 외롭다고 징징거리는 여자는
정신적으로 망가져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당신을 그저 사랑자판기로 보고 있을 뿐이다.
정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값싼 인스턴트 사랑이 아닌
정말 값진것을 주고싶은게 정상이다.
어떤 선택이 당신이 주는 사랑의 가치를 높이는지는
스스로 생각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삶의 통찰
사랑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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